보험사 차량이 도착하려면
2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날씨도 더워 차 안에서 가만히 있기도 뭐 해서
먼저 보닛을 열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대충이라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전원이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전기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어쩌면 배터리까지 사망했을 최악의 경우를 마음속으로
대비하면서 보닛을 들어 올렸다.
언제나 전방 주시 운전을 생활화합시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보는 내가 왜 더 가슴이 아파지는 사진인 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배터리의 상태는 처참했다.
단자가 녹아 있었고
배터리 킬 스위치 역시 녹아 늘어 붙어 있었다.
마이너스 단자를 분리하고
이물들을 제거한 뒤 다시 단자를 붙여보니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스파크가 튄다.(이게 배터리의 마지막이었다.)
누전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원인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배터리에서 배선을 모두 분리하고
일단 여기까지만 확인하고 보닛을 닫았다.
20여 분 후,
보험사 출동 차량이 도착했다.
대롱대롱 르망을 매달고
10여 분을 달려 예전 자주 왔던 카센터에 왔다.
사장님이 다른 차량을 보고 계셔서
그냥 내가 먼저 보고 있겠다고 했다.
카센터 앞 넓은 마당 한쪽에 르망을 내렸다.
사실 나는 리프트도 필요 없고
그저 안전한 공간과
점프시킬 배터리만 있으면 충분했다.
에어클리너 통을 분리하고
엔진룸 깊숙이 머리를 들이밀고
원인을 찾아보았다.
한참을 열심히 찾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어라? 이거 맞으니 아픈데 자세히 보니
우박도 쏟아진다.
와~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게 이런 건가?
전기장치 보고 있는데 물이라니;;;
창문도 모두 열린 채로 달리다 이렇게 된 거라서
비가 내부로 들이친다.
널어둔 공구와 장비들 모두 비 안 맞게 대피시키고
트렁크에 있던 하프 커버로 일단 덮어두었다.
홀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리는 비를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쑥 찾아와서
날 혼란에 빠지게 만들고,
문득 떠나버리는
.
.
.
소 나 기
미션오일 레벨 게이지 파이프에
이상한 단자 같은 것이 용접한 것처럼 늘어 붙어있었다.
사정없이 좌우로 움직여 접합된 부분에 조금의 균열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견고하지 않고 약간의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분리하는 작업이 훨씬 쉬워진다.
구슬땀이 하나 둘 엔진룸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동안 내 돈도 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나 역시 이 블랙홀에 갇힌 채 빠져나가지 못했지,,,
어쩌면 내가 인시던트를 발생시켜 무한히 반복되는
똑같은 매일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단상들로 단단히 기반을 다진
개똥철학이 안드로메다를 향해 갈 때쯤
힘겹게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
도대체 이게 왜 이런 상태로 엔진룸 안에서 놀고 있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처음에는 스타터 모터와 연결되어 있던
케이블인 줄 알았는데
점프시켜 확인했을 시 스타터 모터가 작동이 되었기에
상관없는 케이블이다.
일명 멍텅구리 케이블이었다.
알터네이터 확인해 보니 이미 오래전
배선을 새로 깐 걸로 확인된다.
배선을 새로 깔면서 기존의 배선 처리를 제대로 안 하고
저렇게 노출이 된 상태로 방치가 지금까지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운 좋게 아무 이상 없고, 눈에도 띄지 않았다가
차량 속도가 빨라지고 진동도 심해지니
엔진룸이라는 스테이지에서
신나게 춤을 추다 끌리는 금속을 만나
스파크를 발생시키며 찰싹 붙어 버린 것이다.
다시는 바깥공기를 구경 못하게
꽁꽁 싸매고 케이블 타이로 결박했다.
생각해 보니
불도 나지 않고 레벨 게이지 파이프가 구멍이 날 정도로
용접이 되지 않은 일등공신은
배터리 킬 스위치의 저 플라스틱 부분 덕분이었다.
검은 플라스틱이 완전히 녹으면서
속으로 파고들어 완벽하게 금속 접촉 부위를
분리해서 배터리 킬 상태로 만든 것이었다.
다시 말해 차체로의 접지를 차단해 버린 셈이다.
만약 킬 스위치가 아니었다면 더 심각한 상황을
맛본 뒤 멈췄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점프 배터리 물린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시동이 걸릴 기미가 안 보인다.
▶배터리 테스터로 체크◀
확인 결과 르망 배터리는 완전히 사망했다.
살아 있어도 단자가 너무 많이 망가져서
사용하기가 조금 그랬을 것 같기는 하다.
일단 어쩔 수 없으니 당장 급한 배터리를 거금을 주고
구입하기로 했다.
DIN 타입이라 더 비싸다...ㅠㅠ
배터리 교체하고 시동 잘 걸리고
크게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결제하고 집으로 복귀했다.
며칠 후
출근을 하려고 시트에 앉았는데
계기판에 뭔가 떠 있다.
배터리 경고등이 왜 떠있는 거지?
키도 돌리지 않은 상태인데???
IG1
IG1 상태까지 경고등이 떠 있다가
IG2
IG2로 넘어가고 스타트를 하면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시동을 끄면 들어오고
키를 제거해도 계속 들어와 있다.
발전기가 이상이 있으면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경고등이 들어와야 할 텐데 무언가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물론 발전기는 아무 이상이 없다.
일단 이그니션 스위치 문제인가 싶어서
분해한다.
쇼트 나면서 접점 이상이 생겼나 의심이 되었다.
절연 테이프로 열심히 테이핑 해 놓은 걸 보니
예전에 이그니션 스위치를 교체 하긴 했었나 보다.
저 안에 두 선을 접촉시키면 옛날 영화에서
보던 장면, 바로 키 없이 시동을 걸어 운전이 가능하다.
이상 없다.
날 더운데 뜯느라 땀만 흘렸네;;;
만약 갑자기 시동 걸다 차 키가 부러지면
저 구멍을 일자 드라이버로 돌려주면 시동을 걸 수 있다.
다시 보닛을 열어 찬찬히 살펴본다.
단순하게 배터리 경고등이 들어와 있으니
배터리를 그리고 그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플러스 단자에 연결되어 있던
멍텅구리 케이블의 시작점을 찾아냈다.
예전 메인 전원 선으로 보이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케이블로 변경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기존의 케이블을 왜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연결해 두어
지금까지 이런 상태로 흘러오게 된 건지 생각해 보려 했지만
생각하기가 싫다, 귀찮다.
어찌 되었건 잘 해결되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그리고
내 르망 레이서는 아직도 계기판 꺾을 수 있다는
사실도 추가되었다.
사실 블랙홀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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